Diary2012.02.15 16:46
 내가 9살 동생이 4살이었던 시절 동네에 풀빵 장사하던 아저씨가 계셨다.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하시고 어머니는 병간호를 하시느라 집에 안들어오시기 일쑤였다.
당연히 우리 남매는 돈이 없었는데 길을 가다 동생이 풀빵 냄새를 맡고 먹고싶다고 사달라며 기대에 찬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내 얼굴에서 당황하고 미안해하는 표정을 읽으셨는지 풀빵장수 아저씨는
"마침 풀빵 담을 봉지가 모자란데 너희가 만들어오면 한장에 10원씩 쳐서 빵을주마"
라고 말하셨다.

 단칸방 세들어 살던 시절. 딱풀이 없어 집주인 할머니께 밥풀을 얻어, 신문지를 잘라 열심히 15장을 만들었다.
그 봉투를 가져가 아저씨께 드리고 땅콩빵(개당 10원 팥소 없음) 5개와 계란빵(개당 50원 모양만 계란, 팥소 있음) 2개를 샀다.
집에 돌아와 
동생에게 계란빵 한개를 넘기고 난 땅콩빵을 먼저 먹었다. 동생이 더 먹고싶어하는 눈치여서(당연하다 4살밖에 안됐는데)
남은 계란빵을 손에 쥐어 주었다. 동생은 머뭇거리다 반을 갈라 나에게 주며 "오빠도 앙꼬 있는거 먹어"라고 했다.
그때 나는 "오빠 앙꼬 별로 안먹고 싶어. 너 다 먹어."라고 하며 동생에게 계란빵을 다시 줬다.
나도 먹고싶었지만 앞서 동생이 너무 맛있게 먹었던 모습이 눈에 보여서 그랬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 동생이 다음주면 벌써 대학 졸업을 한다. 생각해보면 풀빵을 나눠먹던 그때 보다도 여유가 있어졌음에도
동생을 잘 챙기지 못하고 살았다. 난 아마 100점보단 0점에 가까운 오빠일지도 모르겠다.

 그 날 어머니가 전날부터 아버지 병간호를 하시고 돌아오신 날이었다.
나는 어머니에게 칭찬이 듣고싶어 봉투를 접어 풀빵과 교환해 동생을 준 얘기를 했다. 어머니는 나를 웃으며 나를 와락 안고
"우리아들 이제 다 컸네. 동생도 돌볼줄 알고."
라고 말씀해주셨다.
 그때의 나는 어머니가 마냥 기뻐하시는 줄 알았다. 그래서 다음날 다시 병원에 가실때 용돈을 더 주신거라 생각했다.

 이제와서 돌이켜보면 어머니는 속으로 얼마나 속상하셨을까? 아버지는 교통사고 당하시고 상대방은 우리보다 가난한 집에서 배달하는 가장이셔서 피해보상도 제대로 받지 못할 상황이었고 수술비와 치료비도 만만치 않았을테고 치료하는동안 수입은 제로가 되고...
어머니는 우리를 재우고 혼자 우셨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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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란도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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